창덕궁의 궁문이다. 북쪽 궁장에 있다.
창덕궁 후원과 바로 통하며 산등성이에 위치한 특성 상 평소에는 닫았다.
'건무(建武)' 뜻은 '무(武)를 세운다(建)'이다. 여기서 '무(武)'는 사신(四神) 중 하나인
현무(玄武)를 말한다. 현무는 북방을 나타내는
동물이다. 즉, 북쪽 문이란 뜻이다.
원래
창덕궁의 북문은
광지문이었다. 그러나
인조 이후 광지문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. 《
승정원일기》의 1784년(정조 8년) 6월 22일 자
기사부터 건무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.
##광지문이 건무문으로 이름이 바뀐 것인지, 아니면 광지문 대신 건무문을 새로 지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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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른 궁문처럼
문을 따로 세운 게 아니고,
담장의 일부인 형태로, 평대문이다. 다만 《
동궐도》에는 문이 한 칸 짜리로 따로 있어서 나중에 모습이 바뀐 듯 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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현판을 문 안쪽에 걸었다. 바탕에 칠을 하지 않았다. 글씨는 원래 검은색이었던 듯 하나 후에 변색된 듯 하다.
- 현재는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하다. 문 밖에는 성균관대학교 대운동장이 있다.
1884년(고종 20년) 갑신정변 때 청나라의 개입으로 개화파가 수세에 몰리자, 창덕궁에 있던 고종이 북묘[1]로 피신할 때 이 문으로 빠져나갔다. 이 때 정변을 주도한 홍영식, 박영교 등이 고종을 호위하다 이 근처에서 살해당했다.#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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